백혈병에 걸린 6세 소녀가 있었다. 이름은 에이미. 시한부로 고통받는 소녀의 소원은 올랜도의 테마파크에 가보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한 호텔 경영자가 숙박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소녀는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기쁨에 들떴지만, 안타깝게도 여행 준비가 끝나기 전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호텔 경영자는 “이런 아픔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미완의 꿈을 대신 이루기로 결심했다. 그의 이름은 헨리 랜드워스. 맨주먹으로 시작해 호텔 체인 주인이 된 그는 1986년, 중병에 걸린 아이들과 가족에게 1주일간의 ‘소원 휴가’를 무료로 제공하는 비영리 휴양마을 기브 키즈 더 월드 빌리지(Give Kids The World Village)를 세웠다.
160여 개의 빌라형 숙박시설을 갖춘 이곳에서 그동안 약 80개국 18만여 명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매주 2000명에 가까운 자원봉사자가 교대하며 이들 가족을 세심하게 돕는다. 2018년 91세로 세상을 떠난 랜드워스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엄청난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아이와 가족 모두에게 행복한 추억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그도 어린 시절 죽다가 살아났다. 벨기에 태생의 유대인인 그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수용소에 갇혔다. 13세부터 18세까지 5년간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다가 전쟁 막판에 처형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의 부모는 이미 희생된 뒤였다. 단돈 20달러를 주머니에 넣고 미국행 화물선을 탄 그는 군에 입대해 영어를 배웠고 한국에 파견돼 6·25전쟁에 참전했다. 그때 참혹한 전장과 굶주린 고아, 아픈 아이들을 보면서 비탄의 세월을 보냈다.
제대 후 호텔 보이로 취직한 뒤 100개의 객실을 갖춘 호텔 지배인이 됐고, 이어 올랜도에 프랜차이즈 호텔 홀리데이인을 열었다. 이후에도 도움이 필요한 중증 어린이와 가족들을 돕고 장학과 구호사업을 병행하면서 참전용사를 돕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는 직접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들고 미국 전역을 돌며 모금 활동을 전개해 한국에서 지속적인 구호사업을 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그는 “조약돌 하나의 물결이 사방으로 번지듯 한 어린이가 변하면 온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일깨워줬다.
이들에 앞서 청일전쟁 때부터 우리나라에 와서 의료선교를 펼치고 서울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힌 3대 가족의 헌신도 있었다. 이곳에는 ‘닥터 홀’로 불린 캐나다 의사 셔우드 홀 부부와 그 부모, 여동생·아들이 잠들어 있다. 이들은 100여 년 전 조선에 와 병들고 가난한 이에게 의술과 복음을 전하고 자기 몸까지 바쳤다. 셔우드 홀 부부는 결핵 치료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1932년 ‘크리스마스실’도 국내 최초로 발행했다.
이 밖에 삼성 현대 LG 등 많은 기업과 종교단체가 폭넓은 후원을 펼치고 있다. 이 덕분에 국내 최초의 소아암 전문 비영리법인인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을 비롯해 한국어린이난치병협회 등의 구호 손길이 넓어질 수 있었다. 백혈병어린이재단은 기브 키즈 더 월드처럼 환자 가족 모임과 후원 캠프, 소원 들어주기, 헌혈 운동 등을 전개하며 희소 난치병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꿈을 심어주고 있다.
어린이는 내일의 주인공이자 미래의 어버이다. 이들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하고 국가도 융성한다. 예부터 “한 아이가 아프면 온 마을이 아프다”고 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다음주면 추석 명절이다. 어느 때보다 섬세하고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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